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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읽기

합리의 틀을 깨고 숨어있던 인간을 만나다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편집부

장애인 체육은 건강권으로 대표되는 장애인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 중 하나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는 아직도 장애인 전용 시설의 건립 등의 지원에 합리의 잣대를 들이대는 시선이 존재한다. 영화는 그들을 향해 인간의 조건에 대해서 질문하며 자유로울 권리를 역설한다.

사회가 만든 틀 안에 갇히다

영화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는 정신병원을 배경으로 인간과 자유에 대해 질문하는 작품이다. 주인공 맥머피(잭 니콜슨)는 1963년 오리건 주립 정신병원에 한시적으로 이감된다. 수감된 채로도 수시로 폭력을 휘두르는 등 통제할 수 없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에 정신감정을 위해 보내진 것이다. 하지만 이런 결과는 그가 의도한 것이다. 교도소의 고된 생활에서 도피하기 위해서 행동을 꾸며낸 그는 강압적인 통제와 교도관들의 감시를 벗어나 병원에서 검사와 진료를 받으며 느긋하게 쉴 생각으로 부풀어 있다.

하지만 환자 생활은 그의 생각과는 정반대로 흘러간다. 벨트로 속박된 채 잠들었다가 아침에 병원 보조원의 도움으로 풀려나 정해진 시간에 약을 먹고 다 같이 모여 심리치료를 겸한 토의를 이어가는 생활은 교도소 이상으로 갑갑하다. 시계태엽처럼 정확하게 정해져 있는 일과를 소화해야 하며 TV 시청은 금지되어 있고 음악은 병원에서 지정한 클래식 외엔 들을 수가 없다. 그나마 카드놀이 정도의 여흥이 있지만 병원 측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그는 이 모든 것이 치료라는 명목으로 허가된 합법적인 시스템이라는 사실에 분노한다.

인간의 권리를 묻다

이에 맥머피는 병원의 시스템을 변화시키고 입소자들의 권리를 찾아주기 위해서 노력한다. 하지만 월드시리즈를 보기 위해서 병원 측으로부터 TV 시청 권한을 따 낸 뒤에도 실무자들이 토의 시간 경과를 이유로 권리를 묵살하자 가상의 야구 경기를 중계하며 환자들의 열광을 이끌어낸다. 또한 야외 휴식 중 병원 버스를 탈취해 환자들을 데리고 바깥으로 나가기도 한다. 환자들이 세상에 나와서 자유를 맛보는 모습은 영화를 대표하는 명장면 중 하나다.

이런 소란 때문에 생기는 손해를 감당할 수 없던 병원은 맥머피에 대한 통제를 강화한다. 사방에서 들어오는 압박에 지쳐버린 맥머피는 결국 탈출을 결심하게 되고 병원에서의 활동을 도왔던 ‘추장’ 브롬든(윌 샘슨)에게 함께 가자고 말한다. 하지만 추장은 사회에서 배제 당했던 아버지를 떠올리며 세상에 대한 공포를 이겨내지 못한다. 병원 속 규율과 속박을 택한 추장과 달리 맥머피는 계속 탈출을 시도하지만 실패를 거듭하게 되고 어느 순간 행방이 묘연해진다. 친구와 함께 행동하지 못했다는 죄책감 때문에 고민하던 추장은 맥머피가 병원에 복귀하자 마침내 함께 탈출할 것을 결심하고 몰래그를 찾아간다.

하지만 이미 병원 측은 맥머피에게 가장 극단적인 정신과 시술인 전두엽 절제술(Lobotomy)을 시행한 후였다. 사고 기능과 지각에 심각한 손상을 주는 비인간적인 시술로 폭력성이 강한 환자를 통제하기 위해서 사용되는 방법이다. 추장은 인성을 상실하고 숨만 붙어있는 상태가 된 맥머피를 직접 안락사시킨 후 병원을 탈출한다.

합리의 허구성을 고발하다

영화는 맥머피와 병원의 대립을 통해서 극을 이끌어간다. 진료의 전권을 쥔 병원의 방식은 합리적이지만 강압적이다. 규율을 철칙으로 삼아 누구에게도 예외 없이 불통의 치료를 강행한다. 아무도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감호와 환자가 원치 않는 치료는 그 자체로 폭력이다. 정신질환이 없는 맥머피의 인간성을 관리자들이 판단에 따라 파괴하는 결과는 이런 일방적 시스템의 위험성을 나타낸다.

추장은 탈출을 위해 샤워실의 급수기를 뜯어내고 창문을 부숴서 통로를 연다. 외부와 통하기 위해서 만들어놓은 창은 굳게 자물쇠가 걸려 본래의 용도를 잃은 상태다. 이는 환자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을 합리 속에 가두지만 대화의 통로를 걸어 잠그고 불통하는 세상에 대한 은유로 보인다. 추장이 시스템에 순종하지 않고 스스로 나서서 행동했을 때 비로소 자유인이 되는 것은 이런 시스템의 허구성을 여실히 드러내는 장치다.

맥머피가 다른 환자들에게 “너희는 미치지 않았고, 길거리의 다른 정상인들과 전혀 다를 게 없다”고 말하는 것은 누구나 타의에 의해 부당한 폭력을 당할 수 있다는 뜻으로도 풀이된다. 이런 명제는 장애인 체육에도 똑같이 적용할 수 있다. 장애인 전용 시설을 마련하고 건강권과 편의를 보장하는 것은 장애가 특권이나 치료의 대상이기 때문에 아니다. 누구나, 언제든 장애를 입을 수 있기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자유롭고 건강할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세상은 장애인과 소통하기 위한 창을 항상 열어두어야 한다. 장애인 체육이 모두가 자유롭고 평등한 새 시대를 여는 창이 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