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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톡톡 2

메달보다 더 빛나는 희망을 던지다

노용화 론볼 전문지도자

이종현 대한장애인체육회 소셜기자

많은 국가대표 선수들이 패럴림픽과 장애인아시아경기대회 등 국제대회에서 메달을 획득해 국위를 선양했다. 노용화 지도자는 론볼 국가대표 선수로 활약하며 대한민국에 수많은 메달을 안겼다. 이제는 대한민국 론볼의 새로운 별을 길러내고 있는 그의 활약상을 들여다보자.

아시아와 세계를 평정하다

노용화 론볼 전문지도자는 현역 시절 국제대회에서 뛰어난 성적을 올리며 우리나라 장애인스포츠의 위상을 높인 전설적인 선수였다. 2002년, 국내 최초로 개최된 장애인아시아경기대회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며 뛰어난 기량을 과시했다. 2004 말레이시아 론볼 세계선수권대회 은메달, 2011 남아공 론볼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금메달과 은메달을 차례로 목에 걸었다. 2014 인천 장애인아시아경기대회에 출전해 금메달과 은메달을 획득하며 대회 2연패를 달성했다. 2015 뉴질랜드 론볼 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금메달과 동메달을 획득해 세계를 다시 한 번 놀라게 했다.

론볼은 잔디 위에서 공을 최대한 표적구에 가깝게 던지는 종목이다. 활동량이 비교적 적지만 고도의 집중력과 전략적 판단력이 필요한 것이 특징이다. 휠체어를 활용할 수 있는 장애인 경기고 야외에서 상쾌한 기분으로 즐길 수 있다. 1988 서울 패럴림픽을 계기로 우리나라에 도입된 후 작년에만 전국적으로 660여 명의 선수들이 활동하는 것으로 조사된 대중적인 스포츠다. 이렇게 종목이 활성화된 데는 장애 체육인들의 노력과 더불어 그들의 롤모델이 된 선수들의 역할도 컸다. 노용화 지도자는 국내외를 더해 90여개의 메달을 따내며 론볼 인구 증가에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

잭을 향해 볼을 던지는 노용화 지도자
2002년 제8회 장애인아시아경기대회 단체 사진
론볼과의 운명적인 만남

평범한 일상을 꾸려오던 그는 30대에 교통사고를 당해 하반신 마비라는 중증장애를 입었다. 하반신에 감각이 없어 스스로 화장실을 갈 수도 없고 경제활동도 불가능해졌다. 임신 중인 아내를 둔 젊은 가장에게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일이었다. 밖에 나서기가 부끄러워 병원과 집만을 오가던 암울한 시기, 그에게 활기를 되찾아준 것은 가족이었다. 충격이 컸음에도 침착한 모습을 보인 아내의 모습은 불안한 마음의 버팀목이 되었다.

용기를 얻은 그가 재활 도중 만난 스포츠가 바로 론볼이었다. 처음에는 소일삼아서 시작했지만 금세 재미를 붙이면서 활동에 열중하게 됐다. 그는 재활을 위해 최선을 다해 운동하면서 점차 자신의 재능도 발견해갔다. 그리고 장애인복지관을 오가며 운동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국가대표 선발전에도 도전해 당당하게 선발됐다. 이후 끊임없는 노력해 국제대회에서 높은 실력을 선보인 덕에 비교적 늦은 나이까지 국가대표로 활약하며 대한민국 론볼의 역사를 다시 썼다.

2002년 제8회 장애인아시아경기대회 시상식
2015 뉴질랜드 세계선수권대회 출전 선수들과의 기념사진
지도자로 더 큰 꿈을 펼치다

비록 화려한 선수생활은 막을 내렸지만 그는 지금도 론볼을 멈추지 않았다. 자신을 희망의 길로 안내한 은사, 김종일 론볼 전 국가대표 감독처럼 지도자의 길을 걷고 있다. 2016년부터 4년 동안 론볼 국가대표 플레잉코치로 선수들을 지도했다. 그리고 올해 3월부터는 전남장애인체육회 론볼 전문지도자로 후배를 양성하고 있다. 전남 나주시에 있는 론볼 경기장에서 직장운동부 선수들의 기량향상을 돕는 전문지도자의 길을 걷고 있다. 주 1회 씩 목포, 순천, 여수, 광양 등 지역의 클럽 팀도 지도한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이론과 실기를 함께 가르치는 집합훈련을 진행하며 선수들 기량 향상을 돕기 위해서 땀흘리고 있다. 또한 신인 선수 발굴과 함께 장애 정도가 심한 이들의 재활도 돕고 있다.

“선수들뿐 아니라 다양한 장애인의 재활에 도움이 됐으면 합니다. 론볼은 활동이 적지만 건강유지에 필요한 충분한 신체활동량을 제공하는 장점이 있습니다. 운동하면서 서로 어울리는 것은 즐겁고 행복한 일이기 때문에 많이들 함께했으면 좋겠습니다.”

남은 삶 동안 사람들이 론볼을 통해서 역경을 딛고 희망을 찾도록 돕겠다는 노용화 지도자. 향후 론볼 선수들을 많이 배출해 실업팀이 구성되면 팀을 총괄하는 감독이 되고 싶다는 포부도 밝혔다. 론볼을 향한 그의 순수한 열정이 종목의 더 큰 부흥으로 이어지길 바란다.